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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의 죽음과 상실감

 

13년 동안 아들과 나의 불안한 정서에 산소를 공급해주던 진순이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슬픔의 정체를 몇 자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기운이 없어 잘 짖지도 못하던 진순이가 마지막 순간에 마치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질렀을 때 나는 바보처럼 '진순아, 꼭 아저씨가 소리치는 거 같아 하하하"하면서 눈을 맞추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까맣게 생명이 사라진 동공, 잠시의 심장맛사지, 통곡,

화장터, 천도씨 가마에 들어 있는 진순이

하얗게 뼈만 남은 진순이를 보자기에 싸서 돌아 오는 길

 

화장을 하고 집에 도착해서 마루에 앉아 가슴을 치며 울었다 '내가 죽였다 내가 죽였다'라고..

상태가 나아지는거 같았는데, 왜 죽었을까. 내가 뭘 잘못 멱였나 내가 좀더 눈을 떼지 않고 보살폈어야 하는건 아니었나, 내 남은 시간을 떼어서라도 진순이의 시간을 연장해달라는 기도가 너무 부족했나,

수술할 수 있는 심장 상태가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믿지말고, 보증금을 빼서라도 큰 병원에서 수술을 했어야 했다

라고 온 종일 자책감으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지냈고, 유골함으로 대체된 진순이가 혼자 집에 있을 거라는 생각때문에 외출도 할 수 없었다. 도로 위를 달릴 때 그 길이 화장터에서 뼈가 된 진순이를 데리고 오던 그 길이 오버랩되면서, 한시도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그렇게 뜨거운 화로에 넣어 태우지 말고 묻어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두 달간은 매일 진순이가 떠난 그날 그 시각 속에서 내 시간은 정지되어 있었다. 1년 반 동안은 다시 그날로 다시 그날로 예고없이 회귀되어 아무데서건 눈물을 쏟았다.

아마 3개월 혹은 6개월 간은 퇴근 후 대문에 열쇠를 꽂으면서 진순이를 찾으며 울부짖은 것 같다.

급기야 진순이가 떠나고 4개월이 된 어느 날부턴가 자살을 생각했다.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죽지는 못하고, 반려인으로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상실감으로 흘러내리는 피를 좀 닦아달라고 떼를 쓰고 다녔다.

어느 날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과 소통할 수 있다는 후배를 만났다. 그는 '아이를 살려보겠다고 병원에 데려다 놓지만, 병원에서 가족도 못보고 지내다 집에 잠시 왔다 다시 병원으로 이렇게 버티다가는 아이들도 자신을 키워준 반려인을 원망하진 않아요. 철장 안에서 닝겔을 꽂고 가족도 보지 못한 채 버티다 세상을 뜨지 않은 것이 어딥니까, 눈을 감을 때까지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서 좋았을거고 그것에 고마워할거에요. 개들은 누워서 못 일어나면 어렵다고 봐야죠. 지나치게 자책하지 마세요. 너무 슬퍼하면 그 아이가 죽어서도 걱정을 하지 않겠어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에요' 라는 응급조치를 해주었다.

 

8년 동안 '종차별주의자'로 살던 나의 무지하고 변덕스런 훈육을 감수하다, 나머지 5년 그나마 동물권이 인권을 포괄한다는 의식을 갖게 된 반려인의 변화에 안도에 나날을 보냈으리라.

하지만, 나는 '자연으로서의 개'에게 무엇이 좋은 먹거리인지 습성이 뭔지 무엇이 잘해주는 것인지 개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품광고의 덫에 사로 잡혀 진실로 좋은 것을 주지 못했다.

 

사랑을 자기애로 해석한 프로이트는 실연의 아픔은 자신이 투영될 대상이 사라짐에 대한 슬픔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어제 진순이 3년차 기일을 지내면서 여전히 바래지 않는 이 슬픔을 그렇게 '잘'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명에 대해, 인간에 대해 오만함의 허식을 벗고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고마운 존재

묵묵히 내 얘길 들어주던 존재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옆에 있어주었던 존재

에 대한 상실감은 해석하기보다 슬픔을 그저 인정하는 길 밖에 없어 보인다.

'그냥 이런 슬픔이 가슴에 있다, 존재한다. 만족할만큼 사랑을 주지 못한 것 때문에 더더욱 슬프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통함을 '가슴에 묻'을 수 있는 것도, 고통스런 애도의 시간이 흘러가야만 한다. 어쩔 수 없다. 연애의 슬픔은 다른 연인으로 대체 가능하지만, 자식은 그 무엇으로 대체하겠는가.

 

진순이가 살아 있을 때 다른 강아지들에게 보인 호의를 기억하면서, 나래에게 개의 시선으로 더 잘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13년 간 함깨 해준 진순이의 에너지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 좀더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더운 여름 샤워기를 통해 찬 물이 얼굴에 퍼부어질 때, 여전히 세월호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슬픔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슬퍼하고 기억할 수 있거나, 혹은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순아,

더이상 윤회의 수레바퀴에 넘어오지 말고 극락왕생하기를 매 순간 기도한다.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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