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지난 해 10월 개봉된 영화 ‘소리도 없이’는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승아(초희), 유아인(태인), 유재명(창복) 주연의 ‘소리도 없이’는 갈수록 강해지는 영화와 드라마의 맛에 길들여진 관객의 입맛에는 한 번 보고서 솔직히 ‘뭔 맛인지 모르겠네’였습니다.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줄거리는 이런 거죠. 어쩌다 부모가 아닌 기독교 신자 창복에게 키워진 태인은 계란 장사와 범죄 조직의 시체치우기 하청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시체처리 장소에 일거리를 제공하는 조직의 실장 용석(임강성)이 나타나 ‘사람을 며칠 맡아주는 일’을 지시합니다. 그러나 이내 조직에서 용석이 퇴출당하면서 ‘사람을 며칠 맡아주면 되던 일’은 ‘어린이(초희) 유괴사건’으로 급발진하게 되죠. 이 사건을 발단으로 드러나는 범죄자들의 죄의식을 방부처리한 파렴치한 언설과 주인공 태인의 말없는 갈등을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의 아름다운 배경으로 연출된 한여름 바람없이 고요한 나무와 붙박힌듯한 하늘은 현실이라기보다, 영화 초반 범죄현장에 걸려 있던 촌스러운 풍경화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몸만 성장한 태인이 정신적으로 머물러 있는 과거 어느 시점의 공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러한 공간 속에서 범죄들의 태도와 말들은 자연스러움을 가장하지만 분명히 기괴합니다. 축산물의 도살현장을 연상케 하는 살인 현장의 깡패들은 몽니를 부리는 것도 없이 자신들의 뒤처리를 맡아주는 태인과 창복에게 매끄럽고 자연스럽고 심지어 평화롭게 일처리를 하고 사라집니다. 아동 유괴범들은 서로에게 실장님, 선생님 따위의 호칭으로 예의바르며, 야쿠르트를 권하는 아동 장기 밀매자의 손은 친절하기까지 하죠.
이처럼 가장 나쁜 것은 이들이 대단히 상식적이고 친철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괴범들과 장기매매범들의 친절한 언어는 자신의 욕망을 겉껍질로 하여 내부에 있을 죄의식을 모조리 빼서 박제된 번들거리는 발화입니다, 앞서 언급한 그림에 적혀있던 ‘성실한 땀방울, 내일의 미소’라는 문구가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을 뺏는 일을 갈등없이 처리하는 자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시골풍경 속에 허름하고 더러운 집이 대변하듯이 문화나 교육, 사회성 이런 것들이 결여된 태인은 청년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소년처럼 행동합니다. 태인은 착한 아들처럼 혹은 길들여진 늑대처럼 창복이 주는 일을 묵묵히 해왔습니다. 창복이 지시하는 일 이외에 스스로 판단하여 처리하는 일은 거의 없어보입니다. 그러던 태인은 초희와의 만남으로 인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처음부터 태인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어쩌면 영화에 등장하는 가식으로 번들거리는 어른들의 맨 얼굴보다 눈에 보이는 ‘가면’은 역설적으로 솔직한 표현처럼 보입니다. 초희는 가면을 자주 사용하는 친구였을까요? 여하튼 태인은 초희와의 만남으로 격동기를 만나야 합니다.
태인은 살인 현장을 목격하는 어린 초희를 염려하고, 장기매매에서 구출해내고 하면서 선과 악을 둘러싼 갈등, 집을 그리워하는 아이에 대한 연민, 소년기의 애틋한 연정 등의 감정을 소리도 없이 표현합니다. 이야기 전체에서 죄의식과 그로 인한 통증은 흙에 묻어버린 경찰의 얼굴을 모자로 가려버리는 태인의 행동에서만 나타나는데, 이로 인해 태인은 살인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초희는 죽은 듯 누워 있는 경찰을 보고 두려워하는 태인에게 삽을 건네주며 ‘니가 늘 해오던 일이나 해’라는 사인을 줍니다. 초희는 태인이 지시받는 범죄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태인은 선과 악에 대한 고민과 판단을 통해 초희를 위해 처음으로 격식있는 옷을 걸치고 학교로 향하죠.
초희는 학교와 부유한 부모에게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 태인에 대한 정보를 수잡하고 집안을 정돈해주고 기꺼이 친절하게 대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태인을 ‘유괴범’으로 호명합니다. 태인에게 초희는 범죄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감정과 판단으로 행동하게 자극을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초희가 태인을 ‘유괴범’으로 정의하여 그가 죄의식 혹은 배신감 그리고 당혹감으로 도망치게 만들고, 태인의 집에 두고 온 토끼가면 대신 예의 바른 얼굴로 달려오는 부모에게 배꼽인사를 하죠. 그렇게 태인과 초희의 시공간은 분리됩니다.
도망치는 태인의 숨찬 슬픔에 콧등이 찡해집니다. 박제된 죄의식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수많은 '태인'이들이 죄의식을 버리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가 가능한 살아있는 욕망은 발화될 수 있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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